사무소 이야기

  • 사무소 이야기
사무소 이야기

<법과 사람> 1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케이앤케이법률사무소 작성일20-01-12 14:20 조회1,103회 댓글0건

본문

 

91d8fb57f9f8c8a47bdeeb5e4efde3fe_1578806559_1767.png 

 

변호사로서 의뢰인과의 사담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다. 변호사법과 변호사 윤리 장전은 의뢰인에 대한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비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으나 공개될 경우 의뢰인에게 유무형으로 불리하게 작용될 것들은 모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변호사법 제26조 변호사 또는 변호사이었던 자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 는 아니 된다.

변호사윤리장전 제 18조 ① 변호사는 직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누설하거나 부당하게 이용하지 아니한다. ② 변호사는 직무와 관련하여 의뢰인과 의사교환을 한 내용이나 의뢰인으로부터 제출받은 문서 또는 물건을 외부에 공개하지 아니한다. ③ 변호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작성한 서류, 메모, 기타 유사한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아니한다.

 

다만 나는 그 누구도 이 분의 정체를 추측할 수 없게 글을 쓸 생각이다. 또한 이 분은 이미 작고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이 분과 있었던 일을 글과 그 과정에서 느낀 소회를 감히 글로 담아보고자 한다.

 

처음부터 이 분은 범상치 않으셨다. 지인의 추천이 아닌 거리에서 간판을 보고 사무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통상 쉽사리 수임을 맡기지 않는다. 이미 법조 거리에서 다른 변호사 사무실 수 곳을 방문하며 수임료와 변호사의 인상을 비교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이 분은 들어오자마자 대뜸, 담당 변호사를 2번이나 바꾸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요구 사항이 많고 까다로운 의뢰인인데 감당할 수 있는지를 대뜸 물었다. 당시 내가 있던 사무실은 개업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나는 사건과 경험 모두 많지 않았다. 그가 제시한 수임료는 이혼 소송임을 감안할 때는 상당한 거액이었다. 내가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하자 그는 그 자리에서 수임 계약을 체결하고 수임료를 바로 계좌로 이체해주었다.

 

자리에 앉아 지금껏 진행된 사건 기록을 읽은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서면에, '칼을 들었던 것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니 손가락이라도 자르겠다는 의미였을 뿐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에 놀랐다는 것은 아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그보다 훨씬 더 심한 일도 많이 본다. 내가 당황했던 것은 의뢰인은 자신의 의사로 변호사에게 서면에 그런 내용을 담게 시켰다는 것이다.

맞고소를 한 의뢰인의 배우자, 즉 피고이자 반소원고였던 그녀는 남편이 칼을 들고 자신을 위협한 사실이 있음을 주장하고 있었다. 실제로 의뢰인이 칼을 든 이유가 무엇인지는 그 장소에 있었던 둘 이외에는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4년 전에나 있던 일이고 달리 증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하면 달리 쟁점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믿어주지 않으니 손가락이라도 자르겠다.'라는 이유로 칼들 들었다는 내용을 부득불 서면에 담아 법원에 제출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런 이야기가 판사에게 좋은 인상을 줄 리가 없다. 어떤 점에서 자백이나 다름 없는 이런 문구를 서면에 제출한 신참내기 변호사를 판사가 어떤 얼굴 표정으로 봤을지는 너무나도 뻔했다. 그는 이 같은 문구를 서면에 넣어줄 것을 끊임 없이 요구했다.  

 

또한 그는 사건을 수임한 날 이후부터 틈만 나면 내게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배우자와 사별한 사실, 사별하고 사업에 성공하여 지금의 배우자를 만난 사실, 그리고 지금 이혼 소송인 배우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지, 이로 인해 자기 자녀가 상처를 받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등등을 매번 토로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여자친구보다 이 의뢰인과 통화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던 것 같다.

 

그에게 자신의 이런 행위를 수용해주는지는 변호사가 자기 사람인지에 대한 일종의 판단 기준이었던 셈이다. 그때는 어린 시절이라 참으로 의아했다. 변호사라 함은 의뢰인의 사건을 승소로 이끄는 사람일 뿐, 가족이나 애인, 친구가 아닌데 왜 그는 내게 그런 역할을 기대했을까?

 

좀 더 나이가 들은 지금은 어렴풋이는 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실은 의뢰인은 참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알겠지만 정이 많다 함은 꼭 좋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사람들에게 도움도 많이 주지만 성정이 여리기 때문에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쉽게 기대고 상처 받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재혼한 배우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이다. 이미 그는 배우자와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 배우자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이혼 소송을 걸고 소장에 구구절절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적었던 것이다. 즉 그에게 소송이란 실은 매우 값비싼 연서(戀書)였으며, 그에게 변호사란 자신의 편에서 외로움과 고통을 묵묵히 들어줄 고용된 상담사였던 것이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불행한 것만도 아니다. 사람들은 일견 모두 정상처럼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조금씩 정상에서 어긋난 부분이 있다. 그가 분명히 보여준 의처증과 비슷했던 모습도 실은 사별했던 전 배우자처럼 평범한 여자와 살았다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타고난 기질에 어딘가 문제가 있더라도,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죽는 사람은 일평생 수면에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고 잘 사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데 의뢰인이 선택한 재혼은 그 시작부터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그는 13살 연하의 대단한 미인과 재혼했다. 화려한 인상이었고 키도 의뢰인보다 훨씬 컸다. 재혼할 당시는 사업이 막 번창할 무렵이라 의뢰인의 수중에는 재산이 많았다. 의뢰인이 배우자에게 보낸 선물의 목록을 보며 나는 승마에 필요한 말 안장이 명품 핸드백만큼 비싼 물건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물론 세대 차가 나는 결혼, 돈을 쫓아서 한 결혼이 무조건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제인 마치와 양가휘가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된,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연인>을 보면 이런 관계의 미묘함이 잘 묘사된다. 식민지 베트남에서 태어나고 자란 가난한 백인 여성인 주인공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중국인 남성의 정부(情婦) 생활을 한다. 이 남자를 만나는 것은 오로지 돈 때문이라고 믿었던 주인공은 그와 이별하고 난 이후에야 서로가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된다. 일평생 서로를 잊지 못하며 그리워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그 시작은 경제력과 같은 외부적 요인이더라도 서로 대화가 잘 통하고 잘 맞아서, 나중에 재산이 줄어든 뒤에도 여전히 행복하게 사는 경우도 흔하다.

다만 이 커플은 처음부터 재력이라는 것이 없으면 지탱될 수 없는 조합으로 보였다. 결혼 생활은 기브 앤 테이브만은 아니다. 하지만 기브 앤 테이크가 없으면 존속이 안 되는 결혼도 분명 있다. 의뢰인의 사업이 계속 성공가도를 달렸다면 나이가 많고 답답한 남자와의 결혼생활에서 용인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 더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맡길 당시, 의뢰인의 사업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의뢰인의 배우자는 더 이상 받는 것이 없으니 줄 것도 없다고 냉정하게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제법 사치스러웠다. 다른 남자를 밖에서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면 의뢰인과는 성 생활을 하지 않은지 수 년이 넘은 상태였다. 의뢰인에게 제법 불리했던 이 소송을 그래도 제법 끌면서 승소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은 바로 그런 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혼인에 있어 유책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원인) 부부의 일방은 다음 각호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에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6.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나는 혼인 파탄의 사유가 서로에게 있음을 주장하며 위자료와 양육권을 다투는 이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내 소중한 희망은 어느 날 한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법정에서 원고와 피고가 대면한 그날, 의뢰인의 입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저는 제 아내와 관계를 가지지 않은지 오래 됐는데 제 아내는 임신했습니다. 임신테스트를 요청합니다."

 

나에게 일절 상의도 없이 즉홍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원고는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집에 있는 와이프의 생리대 개수를 외우고 있는데 두달째 줄지 않았습니다."

 

나는 앉아계셨던 여자 판사님의 당혹스러운 얼굴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임신의 증거가 아니라 피고가 그토록 주장하던, 부정할 수 없는 의처증의 증거였다. 결국 우리는 패소하고 말았다. 위자료의 납부 주체는 원고가 되었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딸의 양육권은 의뢰인의 배우자 쪽으로 가게 되었다.

 


나는 그가 참으로 미웠다. 성공보수 천만원이 걸려있었고 그가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로 인해 사회 초년생 변호사가 의욕을 가지고 몇달 간 덤벼들었던 소송은 그대로 끝이 나버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미움은 판결 당일 그가 대접한 식사 자리에서 조금은 사그러 들었다. 지금까지 내 사소한 서면까지도 일일히 간섭하던 의뢰인, 양육권 뺏길 경우 상상할 수 없을 분노를 표출할 것이 분명해보였던 의뢰인은, 자기 때문에 패소했다고 말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던 것이다.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그는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남이나 다름 없을, 사별한 전처의 동생이나 또는 직장 동료들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와 이 사람은 배우자를 폭행하거나 의처증 같은 것을 가질 사람이 전혀 아니며, 자신들에게 그것을 증언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을테니까. 이혼 소송 같이, 남녀 간 치부가 드러나는 그 문제에 사람들이 잘 개입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확실히 그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를 보듬어주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불을 안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물 같은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에도, 어떤 사람과 사랑을 해야하는지 숙고하는 것에도 모두 훈련이 필요하다. 그것은 영어 단어 몇 개를 외우거나 수학 문제를 푸는 것 따위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의처증이라는 병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기회가 없이 나이가 들어버렸던 불행했던 사람인만큼 한때 내 의뢰인이었던 그에게 이 정도의 심정적 동조를 표한다고 해도 양해해주리라 믿는다. 


얼마 전 우연치 않게 그가 작고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어쩌면 세상에 대한 실망과 스트레스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출근하는 길 그가 무척이나 신경쓰던 딸의 학업, 그 딸 아이가 입학을 목전에 두었던 명문 초등학교로 불리는 곳의 앞을 지나곤 한다. 그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잘 살고 있을까? 그 여자는 죽은 남편을 자신의 딸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말하고 싶다. 네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몰랐던 사람일 뿐,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너를 정말 사랑했노라고.


나이가 먹어 세파에 찌들고, 친절하지만 약아 빠진 그런 사람들만 자주 만나다보니 종종은 여과 없는 목소리로 밤마다 내게 전화해 자기 외로움을 토로하던 그가 그립다. 부디 천국에서는, 먼저 간 그 분과 함께 평안하실 수 있기를. 

* [법과 사람]은 제가 맡은 사건의 다양한 이야기들과 소회를 다룹니다.

 

 

 

이용약관

닫기

개인정보처리방침

닫기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닫기

SITEMAP

회사소개
구성원소개
업무분야
사무소 이야기
언론속의 KNK
승소사례
닫기